COLUMN · 안전보건

“위험성평가는 서류가 아니라, 오늘 아침 현장의 눈입니다”

30년간 건물의 안전을 지켜온 담당자가 말하는, 점검표 한 칸에 담아야 할 진짜 질문들. 사고는 늘 ‘설마’ 했던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기계실 설비를 점검하는 시설관리자

매일 아침, 건물이 깨어나기 전에 현장을 한 바퀴 돈다. 30년째 변하지 않은 의식이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루를 시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위험성평가를 ‘작성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양식을 열고, 칸을 채우고, 서명을 받아 보관함에 넣는 일.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 종이 한 장은 결과일 뿐 본질이 아니다. 위험성평가의 진짜 모습은 책상이 아니라 현장에 있다. 그것은 문서가 아니라 시선이다.

오늘 아침에도 나는 보았다. 어제까지 멀쩡하던 배관 이음새에 맺힌 작은 물방울 하나, 평소보다 반 박자 늦게 닫히는 방화문, 늘 그 자리에 있어서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던 적치물. 누군가에겐 그냥 지나칠 풍경이지만, 그 자리에 30년을 서 있던 사람에게는 전부 ‘질문’이다. 저건 어제도 저랬나. 왜 오늘은 다른가. 이대로 두면 한 달 뒤엔 어떻게 되나.

사고는 예측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대개는, 알면서 외면한 자리에서 일어난다.

현장에서 가장 위험한 말은 ‘설마’다. 설마 저기서, 설마 그게, 설마 오늘. 이 한마디가 점검표의 칸을 흐리게 만든다. 익숙함은 위험을 가린다. 매일 보던 풍경일수록 눈은 게을러지고, 게을러진 눈은 변화를 놓친다. 그래서 좋은 점검은 ‘이상 없음’을 확인하는 일이 아니라 어제와 오늘의 미세한 차이를 끝까지 의심하는 일이다.

점검표의 한 칸에 무엇을 담아야 하느냐고 묻는 후배들에게 늘 같은 말을 한다. 그 칸에 담아야 할 것은 ‘완료’라는 두 글자가 아니라 ‘만약’이라는 질문이라고. 만약 이 설비가 한여름 가장 더운 날 멈춘다면, 만약 가장 사람이 많은 시간에 정전이 된다면. 그 질문을 끝까지 따라가 본 사람만이 종이 위가 아니라 현장에서 사고를 막는다.

30년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은 거창한 이론이 아니다. 안전은 한 번의 큰 결심이 아니라 매일 아침 같은 자리를 같은 눈으로 다시 보는 지루한 성실함으로 지켜진다는 사실이다. 건물의 안전을 맡긴다는 것은 결국 그 지루함을 대신 견뎌 줄 사람을 들이는 일이다.

오늘도 건물은 아무 일 없이 하루를 보냈다. 그 ‘아무 일 없음’이, 누군가의 아침 한 바퀴로 만들어진 것임을 사람들은 잘 모른다. 우리는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지 않게 지키는 일. 그게 우리가 하는 일이니까.

글 · 안전보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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